When the obvious turns treacherous — the Axiom of Choice
"비어 있지 않은 상자들에서 하나씩 고른다." 이보다 당연한 말이 있을까요? 그런데 무한이 끼어드는 순간, 이 당연한 한 문장이 — 완두콩으로 태양을 만드는 괴물 같은 결론까지 — 끌고 옵니다.
딱딱한 공 하나를 유한 개의 조각으로 자릅니다. 그 조각들을 늘이지도, 휘지도 않고 오직 돌리고 옮기기만 해서 다시 맞추면 — 원래와 똑같은 공이 두 개가 됩니다. 부피가 두 배가 된 거죠. 같은 방식으로 완두콩 하나를 잘라 태양만 한 공으로 재조립할 수도 있습니다.
"부피는 보존돼야 하잖아?" 맞습니다 — 보통의 조각이라면요. 비밀은 이 조각들이 부피를 잴 수조차 없는 (비가측) 괴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모든 도형엔 부피가 있다"는 우리의 당연한 믿음이, 여기선 깨집니다. 그리고 이 괴물을 빚어내는 단 하나의 재료가 바로 —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선택 공리입니다.
말은 정말 시시합니다.
상자가 유한 개라면 당연합니다 — 그냥 하나씩 집으면 되니까요. 무한 개라도 고르는 규칙이 있으면 됩니다. 예컨대 "자연수로 이루어진 집합들"이 무한히 많아도, 각 집합에서 가장 작은 수를 고르면 되죠. 문제는 — 규칙을 도무지 댈 수 없는 무한입니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게 다른 기본 공리들(ZF,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에서 증명되는 정리일 거라 여겼습니다. 결말은 충격적이었죠.
즉 선택 공리는 나머지 공리들로부터 독립적입니다 — 참이라 증명할 수도, 거짓이라 반증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선택"의 문제예요. 받아들이면 강력한 정리들이 따라오지만, 동시에 다음 같은 역설들도 함께 따라옵니다.
바나흐–타르스키의 괴물 조각은 어디서 올까요? 가장 작은 씨앗은 비탈리 집합입니다. 구간 \([0,1]\)에서 "차가 유리수면 한 식구"라는 규칙으로 점들을 무한히 많은 동치류로 가르고, 각 식구에서 대표 하나씩을 골라(← 바로 여기서 선택 공리!) 모은 집합 \(V\)를 봅시다. \(V\)를 유리수만큼 평행이동한 복제들은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0,1]\) 일대를 빈틈없이 덮는데 — 그러면 \(V\)에는 길이(측도)를 줄 수가 없습니다. 0이라 하면 전체가 0이 되고, 양수라 하면 무한이 되거든요.
더 깊은 엔진은 자유군 \(F_2\)입니다. 두 개의 회전만으로도 "관계식이 전혀 없는" 자유군이 만들어지는데, 이 군은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역설적 구조를 품고 있어요. 아래 \(F_2\)의 케일리 그래프 — 무한히 뻗는 네 갈래 나무 — 에서 그 비밀을 봅니다.
나무 위에서 진짜 "복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봅시다. \(F_2\)의 모든 단어(\(e\) 제외)를 첫 글자로 네 무더기로 가릅니다: \(W(a),\,W(a^{-1}),\,W(b),\,W(b^{-1})\). 이제 \(W(a^{-1})\)(첫 글자가 \(a^{-1}\)인 단어들)의 맨 앞에 \(a\)를 붙여 보죠. \(a\cdot a^{-1}\)이 소거되니, 결과는 "첫 글자가 \(a\)가 아닌 모든 단어" — 즉 \(W(a^{-1})\cup W(b)\cup W(b^{-1})\cup\{e\}\)가 됩니다.
$$ \underbrace{W(a)}_{\text{한 조각}} \;\cup\; \underbrace{a\cdot W(a^{-1})}_{\text{또 한 조각을 민 것}} \;=\; F_2 \quad(\text{나무 전체!}) $$단 두 조각(하나는 그대로, 하나는 \(a\)만큼 민 것)으로 나무 전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똑같이 \(W(b)\cup b\cdot W(b^{-1}) = F_2\)도 성립하죠. 그러니 네 조각으로 나무 두 그루가 나옵니다 — 이게 복제의 정체입니다.
마지막 한 걸음: 회전군 \(SO(3)\)이 이 \(F_2\)를 품으므로(다음 장), 공의 점들을 이 단어 무더기대로 갈라 회전만으로 똑같이 복제할 수 있습니다. 측정 불가능한 자투리 몇 개를 손보면 — 공 하나가 공 둘이 됩니다. 그것이 바나흐–타르스키입니다.
바나흐–타르스키의 복제는 3차원에서만 일어납니다. 똑같은 시도를 직선(\(\mathbb R\))이나 평면 (\(\mathbb R^2\))에서 하면 — 안 됩니다. 왜일까요? 비밀은 앞 장의 그 자유군 \(F_2\)가 어디에 사는가에 있습니다.
3차원 회전군 \(SO(3)\) 안에는 \(F_2\)가 통째로 들어 있습니다(서로 무관한 두 회전이면 충분). 그래서 공을 \(F_2\)의 역설적 분해 그대로 쪼개 복제할 수 있죠. 반면 직선·평면의 등거리 변환군은 가환적(amenable)이라 — 거칠게 말해 "평균을 매길 수 있어" — 평행이동·회전에 변하지 않는 유한가법 측도가 온 부분집합 위에 존재합니다(바나흐, 1923). 그런 측도가 있으면 "부피가 두 배"는 결코 불가능하죠.
선택 공리는 전혀 달라 보이는 명제들과 완전히 동치입니다. 그중 둘이 특히 유명하죠.
또 하나: "모든 벡터공간은 기저를 가진다"도 선택 공리와 동치입니다. 실수 \(\mathbb R\)을 유리수 위의 벡터공간으로 보면 하멜 기저가 존재하는데, 이걸 쓰면 \(f(x+y)=f(x)+f(y)\)를 만족하면서도 \(f(x)=cx\)가 아닌 — 그래프가 평면을 빽빽이 채우는 괴상한 불연속 함수가 튀어나옵니다. 역시, 아무도 그 함수를 적어낼 수는 없죠.
역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선택 공리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퍼즐을 풀어내기도 합니다.
혼자라면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 못 본 상자 하나에 무슨 수가 들었든 상대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100명이 같은 약속을 미리 정해 두면, 무려 99명이 맞힙니다. 차근차근 보죠.
핵심 관찰: 한 줄에서 상자 하나를 못 봐도, 나머지 무한히 많은 상자(= 꼬리)는 다 보이니 그 줄이 어느 가족에 속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쌍둥이 여부는 유한 개 차이를 무시하니까요). 가족을 알면 그 가족의 대표 수열도 곧바로 알죠.
이 추측이 틀리는 경우는 딱 하나 — 내 줄이 내 대표와 \(N\)번째에서도 아직 다를 때뿐입니다. 즉 내 줄의 "마지막 어긋남 위치"가 \(N\)보다 뒤일 때, 다시 말해 내 어긋남 위치가 다른 99명의 것보다 더 멀 때죠. 그런데 100개의 위치 중 "혼자 가장 뒤"인 사람은 많아야 한 명! 그래서 최소 99명이 정답입니다. 아래에서 100명의 '어긋남 위치'를 무작위로 뽑아 직접 확인해 보세요.
선택 공리를 받아들이면 역설이 따라온다고 했죠. 그렇다고 버리면 평화로울까요? 천만에요. 선택 공리 없이 ZF만 있는 세계에선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즉 선택 공리는 "역설을 부르는 위험물"이면서 동시에 상식을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빼도 이상하고 넣어도 이상한 — 무한이란 원래 그런 곳이에요.
역설의 뿌리는 비가측 집합(비탈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집합에 부피를 줄 수 있는" 세계를 택하면 어떨까요? 그 길이 결정성 공리(Axiom of Determinacy, AD)입니다.
전체 선택 공리 대신 AD를 받아들이면 — 실수의 모든 집합이 르베그 가측이 됩니다. 비탈리 집합도, 바나흐–타르스키도 사라지죠! 하지만 공짜는 없습니다: 정렬정리가 깨집니다(ℝ을 더는 줄 세울 수 없어요). AD와 전체 선택 공리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페이지 내내 한 후렴이 반복됐습니다 — "존재는 하는데 아무도 적어낼 수 없다"(ℝ의 정렬, 하멜 기저, 상자 전략의 대표들…). 바로 그 점 때문에 구성주의 수학자들은 선택 공리를 거부합니다. 이들에게 "존재한다"는 곧 "구성하는 방법을 보여라"이고, 명시적 규칙 없이 무한히 많은 선택을 "그냥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AC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약이거든요.
더 놀라운 건 디아코네스쿠 정리(1975): 구성적 집합론 안에서는 선택 공리가 배중률("\(P\)이거나 \(\lnot P\)이다")을 함의합니다. 고전 수학이 공짜로 여기는 그 배중률을, AC가 끌어내 버리는 거죠. "당연한 것"들이 사실 서로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장면입니다.
완두콩으로 태양을 만들고, ℝ을 줄 세우고, 적어낼 수 없는 함수를 불러내는 — 이 위험한 공리를 왜 대다수 수학자는 그냥 씁니다? 없으면 일상 수학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벡터공간은 기저를 가진다", "콤팩트 공간의 곱은 콤팩트(티호노프 정리)", 해석학과 대수학 곳곳의 정리가 선택 공리에 기대고 있어요. 선택 공리가 없으면 "모든 무한집합은 가산 부분집합을 품는다"는 소박한 사실조차 보장되지 않습니다.
역설들은 선택 공리가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무한이 우리의 유한한 직관을 벗어난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유한한 세계에서 갈고닦은 "당연함"이 무한 앞에서 길을 잃는 것 —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죠. 당연한 것 같은데 당연하지 않을 때, 수학은 직관을 버리는 대신 그것이 어디까지 통하는지를 정확히 묻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이, 완두콩 속에서 태양을 꺼내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