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geometry knocks on reality's door
교과서 속 외심, 소실점, 삼각형… 시험 끝나면 잊어버리는 그 도형들이, 사실은 잃어버린 이어폰을 찾고, 위성으로 내 위치를 짚고, 사진 한 장에서 촬영 장소를 캐내고, 막대기 그림자로 지구 크기까지 잽니다. 학교에서 배운 기하가 현실의 문을 두드리는 네 장면.
2024년 4월, 한 도쿄대 1학년 학생이 캠퍼스에서 무선 이어폰 한 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휴대폰의 블루투스 연결을 켜 두고 주변을 걸으며, 연결이 막 끊기는 지점을 세 군데 찾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을 꺼내 — 단 10분 만에 이어폰을 찾아냈죠. "뇌즙이 멈추지 않았다"는 그 방법이 바로 삼각형의 외심입니다.
외심은 세 변의 수직이등분선이 만나는 점이고, 세 꼭짓점을 지나는 외접원의 중심이죠. 아래에서 "끊기는 점" 세 개를 끌어 보세요 — 외심(이어폰)이 따라 움직입니다.
주머니 속 GPS도 똑같은 발상입니다. 인공위성은 저마다 "나는 지금 여기 있고, 지금은 몇 시 몇 초다"를 끊임없이 방송합니다. 내 수신기는 그 신호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에 빛의 속도를 곱해, 각 위성까지의 거리를 압니다.
위성 하나까지의 거리를 알면 — 나는 그 위성을 중심으로 한 구면 어딘가에 있습니다. 둘이면 두 구의 교차(원), 셋이면 그 원과 또 한 구가 만나 두 점으로 좁혀지고(하나는 우주 밖이라 버림) — 그렇게 위치가 콕 짚힙니다. 이게 삼변측량(trilateration)이죠. 아래는 평면 버전(거리 = 원)입니다.
GPS가 "거리"로 위치를 짚었다면, 지진의 진원은 "시간차"로 찾습니다. 지진파가 관측소마다 도착하는 시각은 다릅니다 — 진원에 가까운 곳이 먼저 흔들리죠. 두 관측소의 도착 시간차에 파동 속도를 곱하면, 진원이 두 관측소에서 떨어진 거리의 차를 알 수 있습니다.
"두 점(관측소)에서 거리의 차가 일정한 점"의 자취 — 그게 바로 쌍곡선입니다(두 관측소가 초점). 관측소 한 쌍이면 진원은 어떤 쌍곡선 위 어딘가, 두 쌍이면 두 쌍곡선의 교점으로 콕 짚히죠. GPS가 원·구로 좁힌다면, 진원 추적은 쌍곡선으로 좁히는 셈입니다(TDOA, 도착시간차 측위).
풍경 사진 한 장만 있어도, 기하학은 "어디서 찍었나"를 캐냅니다. 열쇠는 1장의 그 친구 — 소실점입니다. 현실의 평행선(도로, 건물 모서리)은 사진 속에서 한 점으로 모이죠("평행선이 무한히 먼 한 점에서 만난다"는 이 발상이 곧 사영기하의 출발점입니다). 같은 평면(땅)의 평행선들이 모이는 점들은 모두 한 직선 위에 놓이는데, 그게 지평선(소실선)입니다.
여기에 알려진 지표물(높이를 아는 건물·표지판) 세 개의 사진 속 위치를 더하면, "이 세 점이 이렇게 보이려면 카메라가 정확히 어디 있어야 하는가"를 역으로 풀 수 있습니다 — 측량학의 후방교회법(resection)이죠. 사진 한 장이 곧 촬영 지점을 가리키는 방정식이 되는 겁니다.
왜 격자가 각도로 번역될까요? 핀홀 카메라에서 바닥 위 한 점의 실제 방위각은 \(\theta=\arctan(\text{가로}/\text{깊이})\)인데, 원근 격자가 화면 좌표를 바로 그 가로:깊이 비로 읽어 주기 때문입니다(이게 곧 \(m:n\)). 아래에서 — 위쪽 사진(원근 격자)의 목표를 끌면, 아래쪽 평면도에 실제 위치와 방위각 \(\theta\)가 따라옵니다.
강 건너 산, 바다 위 등대 — 직접 갈 수 없는 곳까지의 거리도 기하는 잽니다. 땅 위에 길이를 아는 기선 (baseline)을 잡고, 그 양 끝에서 목표를 바라본 두 각도만 재면 삼각형이 하나로 정해져 거리가 나오죠 — 삼각측량(triangulation)입니다.
이 삼각형들을 사슬처럼 이어 붙이면 대륙도 잽니다. 19세기 인도 대삼각측량은 수천 km를 삼각형으로 엮어, 멀리 떨어진 봉우리의 높이를 각도만으로 계산해 —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높이를 처음으로 알아냈습니다. 단 한 번도 그 정상에 오르지 않고서요.
기원전 240년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 에라토스테네스는 막대기 그림자만으로 지구의 둘레를 쟀습니다. 비행기도 위성도 없던 시절에요.
그는 두 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① 남쪽 도시 시에네(오늘날 아스완)에서는 하짓날 정오에 깊은 우물 바닥까지 햇빛이 닿는다 — 즉 태양이 정확히 머리 꼭대기에 있어 막대 그림자가 0이다. ② 같은 시각 북쪽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 그림자가 약 7.2° 기울어진다.
햇빛은 거의 평행하게 들어오므로, 이 그림자 각도차 \(7.2°\)는 곧 두 도시가 지구 중심에서 벌어진 각도와 같습니다(평행선의 엇각). \(7.2°\)는 \(360°\)의 1/50. 그러니 지구 둘레는 두 도시 거리의 50배죠.
$$ \text{둘레} = \frac{360^\circ}{7.2^\circ}\times(\text{두 도시 거리}) = 50 \times 5000\,\text{스타디아} \approx 4\text{만 km} $$실제 지구 둘레(약 40,075 km)와 놀랍도록 가깝습니다. 막대기 두 개와 그림자, 그리고 "엇각은 같다"는 중학교 기하 하나로 행성의 크기를 잰 겁니다. 아래에서 그림자 각을 바꿔 보세요.
오늘날엔 같은 원리로 사진 속 그림자 하나에서 위도를 짚습니다(앞 장). 막대기의 기하가 우물에서 출발해 인공위성과 카메라까지 — 2천 년을 가로질러 줄곧 현실의 문을 두드려 온 셈입니다.
에라토스테네스보다 3세기 앞서, 탈레스는 닮은 삼각형 하나로 피라미드 높이를 쟀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시각, 같은 태양 아래라면 막대와 피라미드가 만드는 직각삼각형은 서로 닮은꼴이라 — 막대의 키:그림자 비가 피라미드의 높이:그림자 비와 같거든요.
$$ \frac{\text{피라미드 높이}}{\text{피라미드 그림자}} = \frac{\text{막대 키}}{\text{막대 그림자}} $$마지막은 몸속을 가르지 않고 들여다보는 CT(컴퓨터 단층촬영)입니다. X선을 한 방향으로 쏘면, 통과하며 약해진 정도가 그 방향에서 본 몸속의 "그림자(투영)" 하나를 줍니다. 그림자 하나로는 속을 알 수 없지만 — 수많은 각도에서 찍은 그림자를 모으면 단면 전체를 거꾸로 복원할 수 있죠.
이 "여러 방향 투영 → 본체 복원"의 수학이 라돈 변환과 그 역변환입니다. 1917년 요한 라돈이 순수 기하학으로 풀어 둔 문제가 반세기 뒤 CT 스캐너로 부활해 의학을 바꿨죠. 아래에서 한 물체의 투영(그림자)이 각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세요.
이 모든 이야기의 뼈대는 사실 하나입니다 — "거리·각도·시간 같은 단서 몇 개로 미지의 양 하나를 못 박는다." 외심은 세 거리가 같다는 조건으로, GPS는 네 거리(와 시간)로, 진원은 시간차의 쌍곡선으로, 사진과 삼각측량은 각도로, 에라토스테네스·탈레스는 그림자로, CT는 모든 방향의 투영으로. 거리는 원·구, 거리 차는 쌍곡선, 각도는 삼각형, 투영은 적분 — 단서의 종류마다 꼭 맞는 도형이 있었던 거죠. 교과서가 "외심은 외접원의 중심"이라 가르칠 때 그건 시험용 문장이 아니라 세상을 측량하는 도구의 설명서였던 셈입니다. 기하학은 늘 현실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 우리가 그 노크를 알아듣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