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esn’t matter what marriage is.”
1943년 뉴욕. 인류학자 한 명이 수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친족 규칙을 수학으로 다룰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대가 한 사람은 "수학에는 네 가지 연산이 있는데 결혼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니다"라며 돌려보냈고요.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정반대로 답합니다 — 결혼이 무엇인지는 아무래도 좋다고. 며칠 뒤 그는 호주 원주민의 혼인 규칙에서 군(group)을 꺼내 왔습니다.
망명 중이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뉴욕 신사회조사원에서 강의하며 『친족의 기본 구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가 붙든 문제는 이거였어요 — 세계 곳곳의 사회가 "누구와 결혼해도 되는가"에 대해 저마다 복잡한 규칙을 갖고 있는데, 이 규칙들이 제멋대로인지 아니면 몇 가지 유형뿐인지.
본인 회고에 따르면 수학자들은 그를 경멸조로 맞았습니다. 결혼은 더하기도 곱하기도 아니니 수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였죠. 노대가 자크 아다마르의 거절이 유명합니다.
그때 젊은 앙드레 베유가 답합니다. 부르바키의 그 베유예요. 그의 대답은 아다마르와 정반대였습니다.
이 한 마디가 사실상 구조주의의 정의입니다 — 대상의 내용이 아니라 관계의 체계를 본다는 것. 그리고 며칠 뒤 베유는 『친족의 기본 구조』(1949) 1부 끝에 8쪽짜리 부록을 붙입니다. 「어떤 혼인법 유형들의 대수적 연구에 대하여」. 수리인류학이라는 분야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호주 서부의 카리에라 사회를 봅시다. 이 사회는 모든 사람을 4개 범주로 나눠 놓습니다. 바나카 · 부룽 · 카리메라 · 팔리에리. 태어나면 정해지고, 평생 바뀌지 않고, 누구나 서로의 범주를 압니다. 성씨 같은 사적인 게 아니라 공개된 라벨이에요.
그리고 이 사회의 규칙 두 개가 오직 그 라벨만 보고 작동합니다.
바나카 남자가 누구든, 몇 살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습니다. 아래에서 분파를 눌러 규칙을 따라가 보세요.
여기서 결정적인 사실 하나. 남편의 라벨이 아내의 라벨을 결정하므로, 부부 하나도 라벨 하나로 특정됩니다. 그러니까 "혼인의 유형"이라는 게 생겨요. 카리에라에는 4가지뿐입니다 — (바나카♂+부룽♀), (부룽♂+바나카♀), (카리메라♂+팔리에리♀), (팔리에리♂+카리메라♀).
이제 베유처럼 봅시다. 사상(함수)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유형 하나를 넣으면 유형 하나가 나오는 표입니다. 규칙표에서 두 개가 바로 나옵니다.
σ (아들) — "(바나카♂+부룽♀) 부부의 아들은 장차 어떤 혼인을 하게 되는가?" 자식은 팔리에리, 그 아들은
팔리에리 남자, 그는 카리메라 여자와 결혼 → 그 혼인은 팔리에리형.
δ (딸) — 같은 부부의 딸도 팔리에리. 팔리에리 여자를 아내로 맞는 남자는 카리메라 →
그 혼인은 카리메라형.
| 혼인 유형 | σ : 아들의 혼인 | δ : 딸의 혼인 |
|---|---|---|
| 바나카형 | 팔리에리형 | 카리메라형 |
| 팔리에리형 | 바나카형 | 부룽형 |
| 부룽형 | 카리메라형 | 팔리에리형 |
| 카리메라형 | 부룽형 | 바나카형 |
오른쪽 두 열을 보세요. 각 열에 네 유형이 정확히 한 번씩 나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 어떤 유형이 두 번 나오면 다른 유형 하나는 아들이 아예 태어나지 않는 유형이 되어 한 세대 만에 소멸하거든요. 사회가 계속 굴러간다는 사실이 곧 전단사입니다. 즉 σ와 δ는 4개짜리 집합 위의 치환이에요.
그럼 치환 두 개를 이어 붙여 봅시다. σδ, δσ, σσ, σδσ… 아무리 조합해도 나오는 치환은 딱 4개입니다. 유형의 개수와 같죠. 그리고
$$ \sigma^2=\mathrm{id},\qquad \delta^2=\mathrm{id},\qquad \sigma\delta=\delta\sigma. $$모든 원소가 자기 역원이고 가환인 위수 4의 군 — 클라인 4원군 \(\mathbb{Z}_2\times\mathbb{Z}_2\)입니다. 사회의 범주가 그대로 군의 원소가 되어 버린 거죠.
이제 이 기계가 무엇을 뱉는지 봅시다. 할아버지·할머니 한 쌍에서 출발해 두 갈래로 내려가 보죠.
손자 세대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한쪽은 아들 쪽, 다른 쪽은 딸 쪽 자손이면 — 이게 교차사촌입니다. 그러니까 "교차사촌과 결혼한다"는 말은 곧 "두 경로가 같은 혼인에 도착한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경로는 딱 두 가지뿐입니다.
| 신랑이 온 길 | 신부가 온 길 | 도착지가 같을 조건 | 어떤 사촌 |
|---|---|---|---|
| 딸의 아들 \(\sigma\delta\) | 아들의 딸 \(\delta\sigma\) | \(\sigma\delta=\delta\sigma\) — 교환법칙 | 외사촌 (MBD) |
| 아들의 아들 \(\sigma^2\) | 딸의 딸 \(\delta^2\) | \(\sigma^2=\delta^2\) | 고종사촌 (FZD) |
첫 줄이 정확히 교환법칙입니다. 왜 그게 외사촌혼이냐면 — 신랑은 "딸의 아들"이니 외손자, 신부는 "아들의 딸"이니 친손녀죠. 신랑 입장에서 신부는 어머니의 남자형제의 딸, 즉 외사촌입니다.
직접 내려가 봅시다.
호주 북부와 중부에는 분파가 여덟인 사회들이 있습니다. 아넘랜드의 욜릉우(옛 문헌의 "머른긴"), 중부 사막의 아란다·왈피리 같은 사회들이죠. 구조는 이렇습니다.
이 조건만으로 규칙표가 유일하게 결정됩니다. 위 2장의 그림에서 8분파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게 그 표예요. 실제 이름으로는 왈피리에서 Napaltjarri 여자 × Tjapaltjarri 남자 → 자식은 Tjupurrula/Napurrula 같은 식으로 굴러갑니다(욜릉우는 분파 이름을 mälk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사촌들이 어디에 떨어지느냐 — 계산하면 이렇습니다.
| 체계 | 외사촌 MBD | 고종사촌 FZD | 둘째 교차사촌 MMBDD |
|---|---|---|---|
| 4분파 (카리에라) | 결혼 대상 | 결혼 대상 | 결혼 대상 |
| 8분파 | 결혼 대상 | 제외 | 결혼 대상 |
분파 층위에서 잡히는 진짜 차이는 "고종사촌이 빠진다"입니다. 어느 쪽 사촌이든 좋다는 양측혼에서, 어머니 쪽으로만 가는 일방적 교환으로 바뀌는 것. 군으로는 \(\sigma^2=\delta^2\)이 깨지는 것이고요(\(\mathbb{Z}_2\times\mathbb{Z}_2 \to \mathbb{Z}_2\times\mathbb{Z}_4\)).
레비스트로스가 『친족의 기본 구조』 전체를 걸고 주장한 구분이 바로 이겁니다. 양측혼은 두 집단이 서로 직접 주고받는 제한적 교환이고, 일방혼은 A가 B에게, B가 C에게, C가 다시 A에게 주는 일반적 교환입니다. 후자가 더 많은 집단을 하나의 순환에 묶기 때문에 사회를 더 넓게 엮는다는 게 그의 논지였고 — 그 구분이 여기서는 지수 하나의 등식으로 떨어집니다.
이제 베유가 왜 불려 왔는지 말할 차례입니다. 인류학자 로이드 워너가 기록한 머른긴(욜릉우)의 혼인 규칙은 외사촌혼이었는데, 그가 함께 보고한 계보 라인의 수와 분파 구조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규칙대로 따라가면 어딘가에서 닫히지 않고 어긋나는 거예요.
레비스트로스가 베유에게 들고 간 게 정확히 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보고된 규칙들이 모순 없이 성립하려면 체계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관찰 기록을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능한 체계의 목록에서 자리를 찾는 문제로 바꾼 거죠. 베유의 부록이 한 일이 그겁니다 — 개별 부족을 기술한 게 아니라,
이 논쟁은 길게 이어집니다. 해리슨 화이트의 『An Anatomy of Kinship』(1963), 류빈슝의 「머른긴: 수학적 해법」(1973)까지 — 수십 년간 인류학자와 수학자가 같은 표를 놓고 다퉜어요. 그리고 2009년에는 바누아투 암브림 섬에서 비가환 혼인 체계가 보고됩니다. 위 표의 빈칸이 이론적 여백만은 아니었던 겁니다.
아다마르가 옳았던 부분도 있습니다. 결혼은 정말로 덧셈이 아니에요. 베유가 한 일은 결혼을 수로 바꾼 게 아니라, 결혼이 무엇인지 묻기를 그만둔 것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유형과 그 사이의 관계뿐이었고, 관계만 남기면 그건 이미 군이었죠.
레비스트로스에게 이게 결정적이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관찰된 사회를 하나씩 기술하는 대신, 가능한 구조들의 공간을 그리고 그 안에서 실제 사회가 어느 점에 놓이는지 묻게 됐으니까요. 야콥슨의 음운론과 함께 구조주의를 떠받친 두 기둥 중 하나가 이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름 하나. 이 페이지가 "머른긴"이라 부른 사람들은 자신을 욜릉우(Yolŋu)라고 부릅니다. "머른긴"은 바깥에서 붙인 이름이고요. 아란다도 스스로는 아렌테(Arrernte)입니다. 규칙표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이 정작 표 바깥에 있는 셈인데 — 그래서 그 중국인의 이름은? 편에서 본 그 문제가 여기에도 그대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