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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 이름과 크레딧

그래서 그 중국인의 이름은?

Every theorem has a name. Not everyone gets one.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 일본인의 정리, 중국인 우편배달부 문제. 수학에는 민족 이름이 붙은 정리들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정리를 실제로 쓴 사람의 이름이 대부분 남아 있다는 겁니다 — 신사에 걸린 액자에도, 13세기 산학서에도 서명이 있어요. 우리가 부르지 않을 뿐이죠. 이 페이지는 그 이름들을 하나씩 꺼내 보고, 정리 자체도 직접 만져 봅니다.

1물건이 몇 개인지 모른다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

3~5세기 무렵 중국의 산학서 『손자산경(孫子算經)』에 이런 문제가 실려 있습니다.

물부지수(物不知數) — 물건의 수를 모른다
지금 물건이 있는데 그 수를 모른다. 셋씩 세면 둘이 남고, 다섯씩 세면 셋이 남고, 일곱씩 세면 둘이 남는다. 물건은 몇 개인가?

답은 23입니다. 그리고 105를 더할 때마다 또 답이죠(23, 128, 233, …). 이 "나머지들만 알면 수가 하나로 정해진다"가 오늘날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라 불리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나머지를 바꿔 가며 답이 어떻게 하나로 좁혀지는지 보세요.

나머지 세 개로 수를 가두기

3으로 나눈 나머지 2 5로 3 7로 2
0부터 104까지의 수를 늘어놓고, 세 조건을 각각 만족하는 수에 색을 입혔습니다. 세 색이 모두 겹치는 칸은 언제나 정확히 하나예요 — \(3\cdot5\cdot7=105\)개의 칸에 \((나머지_3,\ 나머지_5,\ 나머지_7)\) 조합이 \(3\times5\times7=105\)가지, 딱 일대일이니까요. 이게 정리의 내용 전부입니다.

손자는 답만 적었지 왜 그런지,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떻게 푸는지는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일반 해법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남송의 진구소(秦九韶), 1247년의 저작 『수서구장(數書九章)』에 실린 대연총수술(大衍總數術)입니다. 나누는 수들이 서로소가 아닐 때까지 다루는, 지금 교과서에 실린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알고리즘이에요.

유럽에서 같은 정리를 정식화한 사람은 가우스(1801, 『정수론 연구』)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붙을 자리는 최소 두 개 있었던 셈이죠 — 진구소의 정리이거나 가우스의 정리이거나. 실제로 붙은 이름은 "중국인의"였습니다.


2신사에 걸린 액자 일본인의 정리

에도 시대 일본에는 산가쿠(算額)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기하 문제를 풀면 그림과 답을 나무 액자에 새겨 신사나 절에 봉납하는 것. 신에게 바치는 감사이자, 지나가는 사람에게 거는 도전이었죠. 수백 장이 남아 있고, 대개 봉납자의 이름과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1800년,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의 산노샤(山王社) 신사에 액자가 하나 걸립니다. 봉납자는 마루야마 료칸(丸山良寛). 거기 적힌 명제가 이렇습니다.

일본인의 정리 (마루야마 료칸, 1800)
원에 내접하는 다각형을 대각선으로 아무렇게나 삼각형으로 쪼갠다. 그러면 생긴 삼각형들의 내접원 반지름의 합은 — 어떻게 쪼개든 항상 같다.

처음 들으면 믿기 어렵습니다. 쪼개는 방법에 따라 삼각형들의 모양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내접원 반지름을 더한 값만 고집스럽게 같다니. 직접 해 보세요 — 꼭짓점을 끌어 다각형을 바꾸고, 삼각분할을 바꿔 가며 오른쪽 아래 합계를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쪼개도 합이 같다

꼭짓점 6
원 위의 점을 끌어 다각형을 바꿔 보세요. 삼각분할 바꾸기를 누를 때마다 쪼개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내접원 반지름의 은 소수점 아래 끝까지 그대로입니다. 개별 반지름은 매번 제각각인데도요.

이 정리에는 사각형 버전도 있습니다 —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을 두 대각선으로 나눠 생기는 네 삼각형의 내심을 이으면 직사각형이 된다는 것. 이것도 산가쿠에서 나왔고, 역시 "일본인의 정리"라 불립니다.

이름은 남아 있었다
핵심은 이겁니다. 산가쿠는 익명 문서가 아닙니다. 액자에는 봉납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1800년 쓰루오카의 그 액자에는 마루야마 료칸이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서구 문헌에 소개될 때 이 정리에 붙은 이름은 사람이 아니라 나라였습니다. "일본 어딘가의 절에서 나온 신기한 기하" 정도로요.

3경의를 담아, 이름을 지우다 중국인 우편배달부 문제

세 번째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이 이름은 모욕이 아니라 헌사로 붙었거든요.

1960년, 중국의 관메이구(管梅谷)가 논문을 하나 씁니다. 우편배달부가 담당 구역의 모든 길을 적어도 한 번씩 지나 우체국으로 돌아오려면, 어떤 경로가 가장 짧은가. 1962년 영어로 번역돼 서구에 알려졌고, 잭 에드먼즈가 이 문제를 최적화 학계에 소개하면서 관메이구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 "중국인 우편배달부 문제"라고요.

오일러의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가 "모든 다리를 정확히 한 번씩"이라면, 관메이구의 문제는 "모든 길을 적어도 한 번씩, 대신 총 길이를 최소로"입니다. 홀수 개의 길이 모이는 교차로들을 짝지어 그 사이를 중복해 걷는 것이 최적이고, 이건 실제로 다항시간에 풀립니다 — 제설차 경로, 쓰레기 수거, 도로 점검이 전부 이 문제예요.

의도와 효과는 다르다
에드먼즈는 이름을 지우려던 게 아니라 남기려던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남은 건 국적이고 사라진 건 사람이었죠. 60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관메이구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요즘은 "관의 문제(Kwan's problem)"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옵니다 — 헌사의 뜻을 살리려면 오히려 이름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4오일러의 오기 펠 방정식

이번엔 이름이 엉뚱한 유럽 사람에게 간 경우입니다. \(x^2-Dy^2=1\)를 정수로 푸는 문제를 우리는 펠 방정식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존 펠은 이 문제를 푼 적이 없습니다.

17세기에 페르마가 이 문제를 도전 과제로 냈고, 브롱커가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오일러가 그 해법을 펠의 것으로 착각해 인용했고, 오일러의 권위가 워낙 커서 이름이 그대로 굳었습니다. 유럽 안에서만 봐도 이미 잘못된 이름인 거죠.

진짜 원조는 훨씬 동쪽, 훨씬 옛날입니다. 브라마굽타가 628년에 두 해를 합성해 새 해를 만드는 항등식(바바나)을 세웠고, 이를 이어 자야데바(10세기경)와 바스카라 2세(1150)가 차크라발라(चक्रवाल, 순환법)라는 일반 해법을 완성했습니다. 유럽보다 500년 이상 앞섭니다.

얼마나 강력한 방법이었는지는 숫자가 말해 줍니다. 페르마가 1657년에 "이건 못 풀걸" 하며 낸 문제가 \(D=61\)이었는데 — 바스카라 2세는 그보다 500년 전에 이미 이 경우를 풀어 두었습니다. 최소해가 이렇습니다.

$$ 1766319049^2 - 61\cdot 226153980^2 = 1. $$

손으로 찍어 맞힐 수 있는 크기가 아니죠. (펠 방정식의 해가 어떻게 폭발하는지는 디오판토스 방정식 편에서 직접 돌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수학사가는 이 방정식을 브라마굽타–바스카라 방정식이라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세 단계의 이름 이동
인도에서 500년 앞서 풀렸지만 유럽 문헌에 반영되지 않았고 → 유럽에서 다시 풀렸는데 푼 사람(브롱커)이 아니라 → 엉뚱한 사람(펠)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크레딧은 두 번 미끄러졌고, 두 번 다 원래 자리에서 멀어지는 방향이었습니다.

5이름의 시차

이런 사례는 몇 개 더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처음 기록된 때부터 지금 쓰는 이름이 붙은 때까지의 간격입니다. 막대의 길이가 곧 크레딧이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고요.

먼저 쓴 사람과, 이름을 가져간 사람

막대 왼쪽 끝 = 처음 기록된 시점과 그 사람, 오른쪽 끝 = 오늘날 이름의 주인. 파란 막대는 이름이 유럽의 개인에게 간 경우, 주황 막대는 이름이 민족 집단으로 뭉뚱그려진 경우입니다. 막대에 마우스를 올리면(모바일은 터치) 설명이 나옵니다.

몇 가지만 풀어 적자면:


6스티글러의 법칙 — 그런데 원래 다 그렇다?

여기서 공정하게 짚을 게 있습니다. 잘못된 이름 붙이기는 유럽 안에서도 일상입니다. 통계학자 스티븐 스티글러가 정리한 스티글러의 명명 법칙이 그것이죠.

스티글러의 명명 법칙 (1980)
어떤 과학적 발견도 최초 발견자의 이름을 따지 않는다.
…그리고 스티글러는 이 법칙의 공을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에게 돌렸습니다. 법칙이 스스로를 증명하도록요.

실제로 오일러의 수 \(e\)는 네이피어가 먼저 봤고, 벤 다이어그램은 오일러가 먼저 그렸고, 카르다노 공식은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것이고, 패턴을 믿지마 편의 벤포드 법칙도 뉴컴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라는 이름 하나만 놓고 인종 문제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문제는 어긋나는 방향에 규칙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위 타임라인을 다시 보면 두 패턴이 보입니다.

비대칭
유럽 안에서 이름이 틀릴 때는 다른 개인에게 갑니다 — 브롱커 대신 펠, 델 페로 대신 카르다노.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유럽 밖의 발견일 때는 개인 이름이 알려져 있어도 민족으로 뭉뚱그려집니다 — 마루야마 료칸이 있는데 "일본인의", 관메이구가 있는데 "중국인". 두 경우 모두 이름은 남아 있었는데도요.
바꿔 말하면, 유럽 쪽에는 개인의 역사가 있고 그 바깥에는 배경이 있다는 가정이 이름에 새겨져 있는 겁니다.

7맺으며 — 되돌릴 수 있는 것

이름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그레고리 급수는 마다바–라이프니츠 급수로 병기되기 시작했고, 펠 방정식을 브라마굽타–바스카라 방정식으로 쓰자는 제안이 있고, 중국인 우편배달부 문제는 관의 문제로 불리는 논문이 늘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느리지만, 논문은 생각보다 빨리 따라갑니다.

사실 이 페이지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가우스가 몇 살에 무엇을 했는지는 알아도, 같은 정리를 500년 앞서 완성한 진구소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는 모릅니다(그는 관료이자 군인이었고, 『수서구장』은 그가 모친상으로 관직을 쉬던 3년 동안 쓴 책입니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찾아본 적이 없어서죠.

그래서 제목의 질문에 답하며 끝내겠습니다. 그 중국인의 이름은 관메이구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국인의 이름은 진구소, 그 일본인의 이름은 마루야마 료칸, 그 인도인의 이름은 브라마굽타바스카라 2세, 마다바입니다. 정리는 어차피 우리 모두의 것이 되지만, 이름은 한 사람의 것이었으니까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