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 drop moments in mathematics
어떤 증명은 칠판을 내려놓는 한마디로, 어떤 결과는 식 한 줄로 좌중을 침묵시켰습니다. 수학사의 전설적인 "마이크 드랍"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1993년 6월 23일, 케임브리지 아이작 뉴턴 연구소. 와일스는 사흘에 걸친 강연 내내 무엇을 향해 가는지 밝히지 않다가, 마지막 칠판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적었습니다. 7년을 다락방에서 혼자 매달린 증명의 결말이었죠. 그리고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객석은 전율했습니다. \(n>2\)이면 \(x^n+y^n=z^n\)의 자연수 해는 없다 — 358년을 버틴 문제가 방금 무너진 것이죠.
원조 마이크 드랍은 정리의 주인공, 페르마 본인입니다. 1637년경 그는 디오판토스의 《산술》 한 귀퉁이에 문제를 적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 한 줄이 이후 358년 동안 수학자들을 약 올렸습니다. 정작 그에게 정말 증명이 있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채로요. 역사상 가장 오래 효력을 발휘한 도발입니다.
겉보기엔 시시한 질문. 정수 \(k\)를 세 정수의 세제곱 합 \(x^3+y^3+z^3=k\)로 쓸 수 있을까? \(k\equiv \pm4 \pmod 9\)는 불가능함이 금방 증명되지만, 나머지는 그냥 찾아야 합니다. 100 미만에서 끝까지 버틴 두 숫자가 33과 42였죠.
2019년 앤드류 부커는 새 알고리즘을 슈퍼컴퓨터에 3주간 돌려, 64년 묵은 33의 답을 찾아냅니다 — 16자리 정수 세 개. 같은 해 서덜랜드와 함께 전 세계 컴퓨터를 빌려 42까지 끝냈죠. 장황한 논문도 필요 없었습니다. 식 한 줄이 전부였으니까요.
1832년 5월, 스무 살의 갈루아는 결투 전날 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수학을 미친 듯이 쏟아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 미처 다 적지 못한 여백마다 그는 휘갈겨 두었죠.
다음 날 그는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 밤에 남긴 노트가 훗날 군론과 갈루아 이론의 씨앗이 되었죠 — 한 청년이 죽음을 앞두고 적어 내린, 현대 대수학의 설계도였습니다. (그의 삶과 수학을 따라간 이야기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사랑받은 남자 편에 있습니다.)
병석의 라마누잔을 찾은 하디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내가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였는데, 참 따분한 수더군. 불길한 징조가 아니면 좋겠네." 라마누잔이 곧장 답했죠.
$$ 1729 = 1^3 + 12^3 = 9^3 + 10^3 $$
그 뒤로 "두 세제곱 합을 두 가지로 쓰는 가장 작은 수"는 택시캡 수라 불립니다. 하디는 훗날 말했죠 — "모든 정수는 라마누잔의 개인적인 친구였다."
2002–2003년, 페렐만은 100년 난제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을 학술지 투고도, 기자회견도 없이 arXiv에 짧은 글 세 편으로 올렸습니다. 그게 전부였죠.
"내 증명이 옳다면 인정은 필요 없고, 틀렸다면 상은 의미가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세기의 난제를 풀고, 수학계를 향해 등을 돌린 채 조용히 사라진 것 — 가장 과묵한 마이크 드랍입니다.
1930년 가을,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은퇴 연설에 나선 힐베르트는 수학의 무한한 낙관을 선언하며 끝맺었습니다. 그의 묘비에까지 새겨진 한마디.
그런데 바로 그 며칠, 같은 도시의 같은 학회에서 스물넷의 무명 청년 쿠르트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 "충분히 강한 어떤 체계에도, 참이지만 그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반드시 있다." 힐베르트의 꿈에 대한, 역사상 가장 절묘한 타이밍의 반박이었죠.
어떤 지도든 이웃한 나라가 다른 색이 되게 칠하는 데 네 색이면 충분하다. 100년 넘게 떠돈 이 추측을 1976년 아펠과 하켄이 증명했습니다 — 1,200시간 넘게 컴퓨터를 돌린 사상 첫 대규모 컴퓨터 증명이었죠(손으로는 검증조차 벅찬 1,936개 경우 분석).
증명을 우표 소인으로 박제해 온 세상에 부친 셈이죠. "이게 정말 증명이냐"는 철학 논쟁까지 불러온, 컴퓨터 시대의 첫 마이크 드랍이었습니다.